장애인의 날을 거부한 420투쟁
4월 20일, 정부가 정한 소위 ‘장애인의 날’의 역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1972년 당시 자신들의 정기총회일인 4월 20일에 ‘제1회 재활의 날’ 행사를 치르고 이후 4월 20일을 ‘재활의날’로 기념해오던 것을 전두환군부독재정권이 1981년부터 같은 날을 ‘심신장애자의 날’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1981년 UN에서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가 되자, 한국정부도 1982년부터 명칭을 ‘장애인의 날’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본질과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렇듯 ‘재활의 날’이 ‘장애인의 날’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정부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재활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활’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재활치료와 같은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재활이데올로기’를 정확히 의미하며, 결국 장애인을 문제가 있는 사람, 이대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 그래서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맞추기 위해 최선의 재활노력을 해서 자신을 고치거나 혹은 장애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가상한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고, 비장애인에게는 동정과 시혜를 요구하는 기만적이고 차별적인 이데올로기가 ‘사랑’과 ‘온정’이라는 가면을 공식적으로 쓰게 된 것이다.
당시의 ‘장애인의 날’ 행사 분위기는 오늘날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정치인들이 앞을 다투어 얼굴을 비추고, 유명연예인들 나오는 화려한 공연이 이어지고,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장애극복상’이라는 시상식과 어우러지고, 장애인을 도와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또 시상식과 함께 어우러지고, 서로 축하도 하고 격려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감동도 주고받는다. 언론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승리와 감동의 드라마들로 장애인의 삶의 현실을 미화하거나 차별의 구조를 은폐하고 지배구조와 권력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기만적인 행태들이 이어진다.
장애인이동권투쟁으로 단련된 주체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4월 20일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동정과 시혜의 행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고 분노하였다. 이들은 정부와 관변단체가 주도했던 시혜적이고 기만적인 ‘장애인의 날’ 행사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투쟁으로 쟁취하기 위한 투쟁대회를 더욱 대대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한다.
정식으로 420투쟁이 시작된 것은 2002년부터이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약칭 "420공동기획단")을 조직하고 장애인의 노동권․이동권․교육권․시설비리척결․장애여성․복지(빈곤, 실업장애인의 최저생계 보장)․참정권의 7개 영역에 대한 요구를 내걸고 4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다양한 투쟁을 전개한다. 당시 <420공동기획단> 참여단체는 총87개 단체로 광범위하게 진보진영의 연대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중심으로 강력한 연대의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사망한 최옥란열사의 1주기인 3월 2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부터 420투쟁은 3월 26일부터 5월 1일 노동절까지의 1달여에 걸친 420투쟁이 정례화된다. 또한 2003년부터 420투쟁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도 <장애인차별철폐 공동실천단>이 구성되어 독자적 요구안을 걸고 투쟁과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서울의 경우 62개 단체가 참여하였고, 경남은 12개, 부산은 17개, 광주는 11개 단체가 참여하였고, 지역의 공동실천단은 <충북장애인권연대>, <광주․전남 장애인인권연대>, <경남장애인차별철폐공동실천단> 등의 구성으로 이어졌고, 이들 조직들은 이후 지역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2003년 420투쟁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장애인의 권리확보를 위한 11개의 요구안 이외에도 ‘전쟁반대! 차별철폐!’를 투쟁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민중운동의 주요 이슈인 반전운동을 장애인운동이 주체적으로 받아 안으려는 의지와 실천으로 볼 수 있다.
2004년 420투쟁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무려 1달여간의 노숙농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2005년에는 투쟁 주최단위를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약칭 <420공동투쟁단>)으로 전환하고 420투쟁 선포에 맞춰 3월 26일 ‘제1회 전국장애인대회’를 조직하여 오늘에 이어져오고 있으며, 4월 20일에는 마포대교를 점거하고 95명이 연행되는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420투쟁은 슬로건과 요구안과 참여단체는 해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장애인이동권투쟁에서부터 이어져온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이념과 주체와 투쟁방식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면서 진행되어왔다.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는 장애인의 권리의식, 직접적 대중투쟁으로 돌파하는 투쟁방식, 진보적 사회변혁운동과의 실천적 연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