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그리고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노동자에게는 ‘5.1 노동절(메이데이)’, 여성에게는 ‘3.8 세계 여성의 날’, 성소수자에게는 ‘5.17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 있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의 법정 노동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던 날이고,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노동자들이 평등한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억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여 지정된 것이다. 즉 이러한 다양한 소수자의 날들은 그들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을 했던 날, 혹은 그러한 투쟁과 노력이 역사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 날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4.20 장애인의 날’은 이와는 다른 역사 속에서 출발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1972년 4월 20일에 정기총회와 함께 제1회 ‘재활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기념해오던 것을 이어받아,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이 1981년부터 같은 날을 ‘심신장애자의 날’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장애인들의 가열 찬 투쟁의 성과물이나 기념해야할 어떤 사건도 없이, 장애인의 날이 이렇듯 정치적 선전물로 출발했기에 지난 20여 년 동안의 기념식은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지금도 ‘장애인의 날’엔 정부와 관변단체에서는 여전히 장애인들을 놀이공원과 체육관으로 불러내 온갖 친철을 베풀고, 언론에서는 인간 승리와 눈물겨운 휴먼드라마로 그들의 삶을 미화해내거나 ARS모금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을 “돕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시혜와 동정의 이름으로, 장애극복의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강화시키고, 장애인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지배 권력에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기만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취지와 의의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약칭 420투쟁)은 이렇게 정부와 관변단체가 주도했던 시혜적이고 일회적인 장애인의 날 행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우리사회의 기만성을 폭로하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대중과 함께 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어 가고자하는 지향 속에서 2002년 처음 시작되었다. 이러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처음 주도했던 것은 장애인이동권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이었으며, 별도의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약칭 420공동투쟁단)을 구성하여 매년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1달여간에 걸친 공동투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도 420공동투쟁단은 단지 장애인 관련 단체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인권․사회․학생단체 등 우리 사회의 진보운동 단체들과 개인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함으로써, 장애운동 내부와 외부의 연대를 확산시키는 계기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420공동투쟁단의 활동은 각개 약진의 형태로 진행되던 영역별 연대체 간의 연대, 서울과 여타 지역 장애인운동간의 연대, 장애인운동과 전체 사회운동과의 연대라는 삼중적 의미를 연대를 실현시켜내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420공동투쟁단의 활동 경험은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건설에 있어 귀중한 밑거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420투쟁은 국가가 지정한 장애인의 날에 관변단체를 동원하여 이루어지던 행사들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동들을 조직해 냄으로써, 매우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에서 시혜와 동정의 이데올로기를 깨뜨려 나가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